오버정우기의 괴악차원 2호점



녹수별곡(綠水別曲) 소설

 소녀(小女)가 지금부터 가로되, 돌이켜보면 소녀는 본래 천하디 천한 계집으로 팔자마저 박복하여 가진 것은 이 몸뚱이 뿐이오, 남에게 팔 것은 교태 뿐이었으니, 어이할손가. 이내 손이 문고리인가, 입술은 술잔인가, 몸은 나룻배인가. 이 사내 저 사내가 잡고 입맞추고 올라타고, 온갖 사내와 짝을 이루어 살기를 여러해 하였소이다.

이러다가 제안군(齊安大君) 댁의 종년이 되어 그 댁의 종놈과 한방에서 살고지고, 아이까지 낳은 몸에 먹고 살기 위해 춤과 노래를 익혀야 했으니, 천지사방에 둘러볼 데 없이 천한 이 몸이 나설 길이란 창기 노릇 뿐이었소.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연산군 일기 47권, 8년(1502 임술 / 명 홍치(弘治) 15년) 11월 25일(갑오) 2번째기사)




노래와 춤을 익혀 창기 노릇을 하였던 바, 뜻밖에도 이 몸에게 재간이 있어 장안에 풍문이 흐르더니, 추풍(秋風)에 낙엽 불듯 허망한 이름이 구중궁궐에까지 미쳐 어느날인가 그대의 부름을 받았소. 그대, 상감께서 친히 소녀의 노래를 들으시고 춤을 추어보라 명하신 뒤 크게 기뻐하시며 이내 손을 잡고 끌어당겨 이리저리 돌아보며, '오늘 너를 얻음이 손 안에 진주를 쥠과 같구나' 탄복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만 같소이다. 

밤마다 이몸을 품에 안고 어르시며 '네 올해로 나이가 몇이더냐?' 고 되풀이 되풀이 물으시고, 바탕이 천한 계집이오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고 서른 즈음인가 하나이다 대답올리면 '그러하냐, 이 눈에는 아무리 보아도 여적 이팔청춘(二八靑春) 꽃봉오리로구나.' 흥쾌히 웃던 그대 앞에서, 소녀는 영문도 모르고 같이 웃었더랬소.

그러던 어느날 그대 이몸에게 녹수야, 부르시고 네 벼슬 한번 해보려느냐, 웃으며 물으시기에 천한 계집의 몸이 되어서 무슨 벼슬이옵니까, 장악원(院,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이라도 떼어 맡겨주시렵니까, 하고 역시 웃으며 대답한즉, 그대가 다시 말씀하셨소이다. 계집이라고 벼슬하지 못하리란 법이 있다더냐, 내명부() 직첩도 벼슬이 아니더냐...내일부터는 장 숙원(媛)이다. 내 그대에게 종 4품직 숙원을 제수하겠노라...

짐짓 엄숙하게 말하며 가가대소하시는 그대를 보고 소녀는 또 따라 웃었소이다만, 그때만 하여도 내심으로는 그다지 기쁜 것을 알지 못하였소이다. 이름뿐인 직첩이 무엇이 그리 중한고, 장 숙원이라는 이름이 금은보화 비단주필 가락지 노리개 등속보다 값어치가 있다더냐... 그때는 그리 생각하였소.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연산군 일기 47권, 8년(1502 임술 / 명 홍치(弘治) 15년) 11월 25일(갑오) 2번째기사)



그 후로 그대의 과분한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어, 무명을 주시고 쌀을 주시고 콩을 주시고, 논밭을 받아 딸린 부역을 면제받고 사는 집 주변의 민가는 모두 사들여 헐어 버리셨소, 소녀의 오라비며 형부에서 어린 딸의 유모에게까지 은전과 관직이 미쳐, 이내 한 몸으로부터 온갖 재물과 품계가 오르내리더이다...이몸의 머리 위에 실린 첩지 역시 그 빛이 더해져, 어느 결인가에 장 숙원이 장 숙용(容)이 되어 있더이다. 

지난날 처음 내명부 직첩을 받은 날에는 도리어 금은보화를 원하였으나, 막상 손 안에 재물이 그득히 쌓인 즉 그 또한 생각해오던 바와 달리 기쁘지 않았던 것은 어인 영문인지 알수 없소.

대저 사내의 사랑이란 가랑불 같은 것이라, 타오를 제는 바직바직 하얀 연기도 요란하나 꺼지고 나면 허망하여 불씨조차 남지 않는 것임을 소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소. 그리하여 그대에게 하사받은 금은보화가 영롱할수록, 이 몸의 일가친척들이 그대에게 제수받은 벼슬이 당당할수록 소녀의 마음은 불안했던가 하오... 

임금의 총애가 마침내 다하는 날에 소녀의 한 몸이 겪게 될 풍운이, 일개 기생으로서 범상한 양반님네에게 거슬러 내쫓김을 당하는 것에 비해 어찌 아니 참혹하리오. 소녀는 그것을 알았기에 호랑이 등에 탄 사람과 같이 죽을 힘을 다해 그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노력했었소이다. 그대는 그것을 아시었는지.


- 전교하기를,
“장한필(張漢弼)은 어느 때의 조사(朝士)인가?”
하매, 승지 이자건(李自健)이 아뢰기를,
“장한필(張漢弼)은 문과(文科) 출신으로서 신이 무신년3288) 에 경차관(敬差官)으로 충청도에 갔을 때 장한필이 문의 현령(文義縣令)이었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장한필의 내력을 상고해서 아뢰라.”
하였다. 장한필은 숙원(淑媛) 녹수(祿壽)의 아비인 까닭으로 물은 것이다.
(연산 43권, 8년(1502 임술 / 명 홍치(弘治) 15년) 3월 9일(신사) 1번째기사)

- 김효손(김효손은 장녹수의 형부이다)을 사정으로 삼다(연산 47권, 8년(1502 임술 / 명 홍치(弘治) 15년) 11월 25일(갑오) 2번째기사)

- 교서관 관원에게 ‘숙원 장씨’ 네 글자를 쓰게 하다(연산 50권, 9년(1503 계해 / 명 홍치(弘治) 16년) 6월 2일(정유) 1번째기사)

-장녹수의 형부 김효손을 함경도 전향 별감에 제수하다(연산 51권, 9년(1503 계해 / 명 홍치(弘治) 16년) 11월 13일(병자) 2번째기사)
 
- 숙원 장씨를 숙용으로 삼다(연산 51권, 9년(1503 계해 / 명 홍치(弘治) 16년) 12월 24일(정사) 1번째기사)

- 무명을 장 숙용의 집에 하사하다(연산 52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3월 6일(정묘) 1번째기사 ) 

- 장 숙용의 집 인근의 민가를 헐어 집을 넓히게 하다(연산 52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3월 8일(기사) 3번째기사 )

- 장 숙용의 집에 물품을 하사하다(연산 56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12월 1일(정사) 2번째기사)  
  
- 장준손(장준손은 장녹수의 일가붙이이다)을 강화 부사로 삼게 하다(연산 61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2월 4일(갑인) 2번째기사 ) 

-숙용이 산 집을 빼앗은 윤천동을 처벌하게 하다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8월 1일(무신) 10번째기사)

- 장 숙용 집 토전의 잡역을 면제하게 하다(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8월 2일(기유) 3번째기사  )


...그러던 어느날, 그대가 창경궁 후원에서 시를 짓고 악사를 연주시켜 노시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용안을 굳히고 내 쪽을 보며 말씀하시길, '녹수야, 저기 앉은 새 두마리가 뵈느냐' 하시기에 '녜, 하나는 작고 하나는 크니 필경 어미새와 새끼새인줄 아오.' 라고 답했더니 잠시 말이 없으시고, 잠시 후에야 입을 열어 물으셨소이다. 녹수야, 너에게도 자식이 있느냐...

가슴이 내려앉는 듯 철렁하여 상감께서 총애해주시어 낳은 계집아이 영수(靈壽)가 이미 몇살박이인데 새삼스레 물으십니까, 라고 한즉 그 아이가 아니라 궐 안에 들어오기 전에 낳은 아이 말이다... 라고 하셨소.

소녀는 오늘따라 그대가 왜 이러는가, 무엇을 추궁하려 드는가 싶어 주저하면서도 끝내 거짓은 고하지 못했소이다. 이내 팔자가 사나와 많은 사내들과 살았지만 낳았던 자식이라고는 단 하나인데 제안대군 댁 가노(家奴)와의 사이에서 본 아들이오... 하나 어미를 잘못만나 궐 안에 들어오기 얼마 전에 병에 걸려 죽고 말았으니, 개동이니 말동이니 하는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아이가 있소...하고 여쭈었더니, 그대가 용안을 더욱 흐리시며 녹수야, 부르시고는 네 아직도 그 아이가 생각나는 일이 있니, 하시기에 젖 몇번 물려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무어 기억나는 일이 그리도 많겠소이까, 다만 그 아이가 병에 걸려 앓다가 숨을 그칠 때 어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해서 살려달라는듯이 어미를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아직도 가끔 떠오르곤 하오... 라고 대답하였소이다.

그러자 그대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한동안 말을 삼키고 있으시다가, 어미나 자식이나 매일반이다. 어미 없는 자식이 어디에 있노, 들리지도 않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그대로 악사와 시회를 파하셨소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나 지났는고, 낮 동안 뵙지 못하다가 늦은 밤에 뵈온 용안이 참담하여 놀라 무슨 일인가 여쭈니, 별다른 말은 없고 대뜸 임사홍(洪)의 사저에 다녀왔노라, 떨리는 옥음으로 말하셨소이다. 임씨의 집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온 것인지 알 수 없어 청맹과니처럼 앉아있던 소녀에게 그때 그대가 보여주었던 것이 무엇이오.

떨리는 손으로 보료 옆에 놓여있던 목함을 집어들어 서안에 올려놓고, 금구(金龜) 자물통에 쇠를 꽂아넣고 함을 열어 안에 있던 것을 손바닥에 받쳐들고, 보아라, 적삼이다. 내 어머니가 입으셨던 적삼이야. 여기 묻은 것이 약 자국이고, 여기 묻은 것이 핏자국이다. 보아라, 녹수야. 이게 내 어머니가 흘린 피다. 어머니가 약을 먹고 돌아가시면서 흘린 피이고 약이야. 녹수야. 녹수야. 대체 어떤 놈들이냐, 어떤 연놈들이 어머니에게 피를 흘리게 한게냐. 응...

말을 내지 못하고 용안을 실룩거리면서 그대는 용루(龍淚)를 머금었더랬소. 약사발이 웬 말이구, 웬 말이구, 되풀이 토해내며 피묻은 적삼에 눈물 젖은 얼굴을 뭉개던 그대 앞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으려오.

이 몸이 궁에 들어온지가 2년여요, 그간 그대에게서 받은 칭찬이며 금은보화며 관작이며 노비가 얼마요...내명부 첩지는 종 3품 숙용이요, 사내들의 동서 양반으로 치면 성균관의 사성()이 아니오. 그 많은 것들을 그대에게서 받아내면서도 한번도 알지 못했던 무언가가 소녀의 심중에 들어찼던 것이외다.

눈물 그득한 얼굴로 몸부림치며 찢긴 적삼을 안고 있는 그대에게서, 궐 안에 들어오기 전에 낳아 죽인 내 새끼의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면 무어라실테요, 임금을 능멸하느냐고 화를 내실테요. 소녀가 궐 안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그대의 우는 얼굴을 보고는 마음 한켠에서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대는 무어라 말하시겠소이까...어찌 되었든 소녀가 진정으로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날 그때부터인가 하오.

    
- 어느날 상이 미복(微服)으로 그의 집에 가서 사홍을 불러 술잔을 올리게 하였는데, 사홍은 임금을 뵙자 절하며 울기를 목이 메이도록 하였다. 임금이 깜짝 놀라 물으니, 사홍은 말하기를 ‘대궐 문이 겹겹이라 스스로 들어가 아뢸 수 없었는데, 오늘 저의 집에서 성주를 뵐 줄 어찌 뜻하였겠습니까.’ 하고, 이어 ‘엄 숙의(嚴淑儀)) 와 정 소용(鄭昭容)이 모후(母后)를 참소하여 폐비하였다.’고 무소(誣訴)하니, 임금도 또한 울었다. 밤이 들어 환궁하자, 곧 엄·정 두 원(媛)을 불러 손수 죽였다.
얼마되지 않아 사홍에게 공조 참판을 제수하였다. 이조·병조 판서를 역임하면서 받은 뇌물이 만에 이르렀다. 충훈부 도사(忠勳府都事) 남걸(南傑), 의금부 도사 이사우(李嗣宇), 병조 정랑(兵曹正郞) 윤귀수(尹龜壽)가 그를 아비처럼 섬겼는데, 사홍은 또한 예우를 하지 않고 종처럼 대하였다. 사홍이 주계군(朱溪君) 심원(深源)·광양군(廣陽君) 이세좌(李世佐)와 틈이 있었는데, 그들을 다 참소하여 죽이니, 이때문에 사람들이 흘겨보았다. 갑자년5561) 이후에 옛 제도를 변경하고 대신울 살륙하며 여러 차례의 큰 옥사가 일어났는데, 다 사홍이 인도한 것이다.
(연산 62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4월 17일(병인) 2번째기사 )

-유순·허침 등이 폐비의 일을 상고하여 아뢰다  

(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5일(을축) 1번째기사)



그날 이후로 소녀는 사랑하는 임의 몸에서 풍겨나오는 짙은 혈향을 맡았소. 국청을 설치하고 죄인을 심문하고 장을 때리고 도를 보내고 산 자는 목을 쳐서 내걸고 죽은 자는 관을 꺼내 부수고 백골을 참하고 가산을 몰수하는 틈틈이 소녀를 찾는 그대의 눈에 어린 살기와, 그대의 옷에 묻은 피냄새와, 그대의 발 끝에 얽힌 비명을 이 몸은 똑똑히 보고 느끼었소. 그대가 미친듯이 웃으며 주연을 열라 기생들을 들이라, 조선 팔도의 미녀들을 모두 뽑아 올리라 하는 것도 이 몸은 옆에서 웃고 보았소이다. 비록 그대가 미쳐야만 웃을 수 있는 임금이 되었다손 해도 소녀는 그런 임을 사랑했소. 

계집의 사랑과 사내의 사랑은 물과 불처럼 달라서 섞일 곳이 없다 하나, 그 깊이가 끝에 이르게 되면 상대를 위하여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지는 것 하나만큼은 같은 것이외다. 하물며 그대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면 이 몸이 어찌 말렸겠소이까. 어린 자식이 입에 넣을 것과 넣지 못할 것을 구분치 못하고 손에 집는 것을 따듯한 눈으로 지켜보는 어미처럼 이 몸은 그대를 보았소.

-성준·노공필을 유배보내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5일(을축) 2번째기사)

-폐비의 일을 재차 상고한 뒤 아뢴 정승을 처벌케 하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7일(정묘) 1번째기사)

-이극균과 이세좌의 혼인한 집를 아뢰고 관직에 못나가게 하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13일(계유) 8번째기사)


-폐비의 일이 누락되지 않도록 다시 상세히 상고하게 하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13일(계유) 11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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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의 일에 언문을 번역한 자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16일(병자) 3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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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에 관여한 자에 대하여 승정원이 서계하다(연산 53권, 10년(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윤4월 17일(정축) 3번째기사)

-전교하기를,
“숙의(淑儀)에 마땅한 청녀(靑女)를 20세부터 30세까지 중외를 막론하고 간택하되, 만약 숨기거나 빼돌리면 그 가장을 중죄로 논하고, 절린(切隣) 역시 중하게 논하며, 간택할 때 사정을 두었다가 발각되어도 아울러 죄를 주라.”
하고, 또 전교하기를,
“팔도에 보낼 채청녀사(採靑女使) 및 채응견사(採鷹犬使)를 속히 뽑아 보내라.”
하였다.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8월 9일(병진) 5번째기사)




어느날인가 흥청들을 거느리고 후원에서 그대와 함께 놀았더니, 손수 피리를 들어 부시고 곧 내던지시며 시를 지어 탄식하셨소이다. 기억하시외까. 인생여초로 회합불다시(人生餘草露 懷合不多時)라,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이야. 그때 그대가 얼굴에 비춘 두어줄기 눈물은 어찌 된 일이었소. 그날 소녀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시며, 궐 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어찌 빠져나가겠노, 하셨으니 이때 이미 무슨 예감이라도 계시었소. 노인이 오래 살아 세상 일을 많이 겪으면 종종 앞 일을 내다본다 하고, 이감(異感) 있는 술사들이 술수를 짚어 점괘를 뽑는다고 하오만 그때 연부역강한 그대께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었소이까... 지금까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면 이것이라 하겠소.  

- 후원에서 나인들과 놀면서 불의의 변고를 예감하다. 전비와 장녹수 두 계집이 슬피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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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거둥이 있었는데, 왕이 후정(後庭) 나인을 거느리고 후원(後苑)에서 잔치하며 스스로 초금 두어 곡조를 불고, 탄식하기를,
인생은 초로와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는 것
하며, 읊기를 마치자 두어 줄 눈물을 흘렸는데, 여러 계집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고 유독 전비(田非)와 장녹수(張綠水) 두 계집은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으니, 왕이 그들의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들은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하며, 각각 물건을 하사하였다.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8월 23일(경오) 1번째기사)



...........................(중략)...........................


-중종이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연산군을 폐하여 교동현에 옮기다(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9월 2일(기묘) 1번째기사)


하늘이 무너진 것이외까, 땅이 꺼진 것이외까. 삼경이 넘어 윤승지며 이승지며가 경황없이 뛰어들어와 아뢰기를 전하, 큰 변이 일어났사옵니다...지금 한 떼의 무리들이 궁성을 둘러싸고 돈화문 바깥에 모여 성문을 열라 하고 있사오니 이를 어찌하오리까...숙위병(宿衛兵)과 시종 환관들은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이냐, 모두 도망친 줄로 아옵니다... 그때 그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당황이었소, 홀가분함이었소, 마치 이럴 날이 올 줄 알고 계시었다는 듯이 윤 승지 무리들이 바깥 경황을 살펴보고 오겠노라 도망칠 때에도 붙잡지 아니하더이다.

이윽고 원종(朴元宗)의 무리들이 몰려와 '옥새를 내어놓고 동궁으로 물러나시옵소서' 운운하였을 때 두말없이 국새를 내어주는 그대를 보았을 때, 소녀는 원종 무리들의 손에 넘겨지는 그 옥새가 마치 이 몸이라도 되는 것 처럼 마음이 아팠소이다... 옥새마저 내어주는 그대가 무엇인들 그들의 손아귀에 내어주지 않을 수 있겠소...이 몸 역시 곧 그 옥새처럼 저들의 손에 떨어질 것이로되, 그 말로는 비할 수 없으리만치 참혹할 것임을 소녀는 알았소.

그대가 상감 칭호를 잃고 폐주(廢主) 연산이라 불리오며 교동으로 내쳐지고, 소녀는 곧 우악스러운 사내들에게 끌려나갔으니 끌리어 가는 곳은 군기시(軍器寺) 앞이라 하는지라, 예로부터 만백성 앞에서 죄인의 목을 쳐서 본보기를 보인다는 곳이 아니외까. 이로써 소녀의 목과 몸뚱이도 새파란 칼날 아래 각각 나뉘어 떨어졌던 것이오이다. 


-신시(申時)에 근정전에서 즉위하여 백관의 하례를 받고 대사령(大赦令)을 중외해 내렸으며, 대비의 명에 의하여 전왕을 폐위 연산군으로 강봉하여 교동(喬桐)에 옮기고, 왕비 신씨를 폐하여 사제(私第)로 내쳤으며, 세자 이황 및 모든 왕자들을 각 고을에 안치시키고, 전비(田非)·녹수·백견(白犬)을 군기시(軍器寺) 앞에서 베니, 도중(都中) 사람들이 다투어 기왓장과 돌멩이를 그들의 국부에 던지면서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하였는데, 잠깐 사이에 돌무더기를 이루었다.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9월 2일(기묘) 1번째기사)


...망나니의 칼에 목을 떨군지 얼마인지 알 수 없소. 홀연 몸이 가벼워지는 듯 하더니 무릎꿇려 있던 몸이 깃털처럼 똑바로 일어나 서고, 손길 가는 곳에 거칠 것 없고 마음 가는 곳에 눈길이 미치게 되었으니 이것이 혼령이라 하는 것이외까. 번뜻 몸을 일으켜 궁궐 안을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라고는 없구려. 중궁전에는 새 왕비가 곕시고 대전에는 새 왕이 곕시고 새로운 조정 대신들이 그대의 일을 의논하고 있더이다.

마음 미치는 대로 몸뚱이 베인 뒤의 세상을 보았소... 그대의 왕비 신씨께서 그대가 교동으로 내어쫓긴 뒤 기어코 뒤를 따르려고 하다가 이루지 못하고 눈물과 함께 사처로 내쳐진 것을 보았고 이몸의 일가친척과 가노별배들마저도 죄를 받아 잡혀들어가고 목을 베이고 가산을 몰수당하는 것을 보았소. 그대의 아홉살 난 큰아들 황이가 폐세자 처분을 받고도 아무것도 모른 채 '오늘 아침은 왜 꿩고기 반찬을 안주오' 라고 묻는 것도 보았고 그 말에 나인들이 '가엾다, 앞으로는 피죽도 제대로 못 드실 분이...'라고 눈물 짓는 모습도 보았소이다.
그대 가는 길에 백성들은 '충성이란 사모요, 거동은 곧 교동일세, 일만 흥청 어디 두고 석양 하늘에 뉘를 좇아 가는고, 두어라 예 또한 가시의 집이니 날 새우기엔 무방하고 또 조용하지요' 노래를 부르고, 꿩고기를 달라 한 그대의 아들은 1년 뒤에 사사를 받게 되니 일찍이 어머니와 같은 방법으로 아들을 잃게 된 그대의 심정이 오늘 어떠하겠소...

-폐부(廢婦) 신씨(愼氏)는 어진 덕이 있어 화평하고 후중하고 온순하고 근신하여, 아랫사람들을 은혜로써 어루만졌으며, 왕이 총애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妃)가 또한 더 후하게 대하므로, 왕은 비록 미치고 포학하였지만,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았다. 매양 왕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음난, 방종함이 한없음을 볼 적마다 밤낮으로 근심하였으며, 때론 울며 간하되 말 뜻이 지극히 간곡하고 절실했는데, 왕이 비록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내지는 않았다. 또 번번이 대군·공주·무보(姆保)·노복들을 계칙(戒勅)하여 함부로 방자한 짓을 못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서는 울부짖으며 기필코 왕을 따라 가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연산 63권, 12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9월 2일(기묘) 1번째기사)


-폐세자
이황·창녕 대군 이성·양평군 이인·이돈수 등을 사사하다(중종 1권, 1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9월 24일(경자) 3번째기사)



................(중략)................


...혼령이 된 몸에 가로막힐 것 없는지라 물을 건너 교동이오. 임금자리에서 내어쫓기고 군졸 나부랭이들에게 멸시를 받으며 그대는 살고 있더이다. 한때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몸으로 당하는 수모와 치욕이 구차하오. 보는 소녀의 눈으로도 민망함을 이길 수 없었거든 그대는 오죽하셨겠소이까. 병이 들어 자리에 누워 눈도 뜨지 못하시고 괴로워하시니, 소녀가 이미 죽은 몸인 것이 한스러울 따름으로 안타까울 뿐이오. 시를 짓고 음률을 짐작하고, 가면을 쓰고 처용무를 추던 그 때의 옥골준안은 어디가고 수척하게 마른 사내가 여기 있구려,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임이 여기 있구려.

-연산군이 병이 나 의원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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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수직장(喬桐守直將) 김양필(金良弼), 군관 윤귀서(尹龜瑞)가 와서 아뢰기를,
“연산군이 역질로 몹시 괴로와 하여 물도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눈도 뜨지 못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구병할 만한 약을 내의원(內醫院)에 물어라.”
하고, 삼공에게 의논하여 의원을 보내 구료(救療)하게 하였다.
(중종 1권, 1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11월 7일(임오) 4번째기사)



오늘 고열을 앓으며 자리에 누운 그대의 머리맡에 앉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건대, 병에 취해 이따끔 모를 소리를 하는 그대의 입에서 소녀의 이름이 나오기를 은연중에 기대하였소이다만, 끝내 그대는 녹수야, 소녀의 이름자를 불러주지 않소이다그려. 이렇게 머리맡에 앉아 있건만 볼수도 없고 냄새 맡을수도 없고 만질수도 들을수도 없으니 이것은 또 어디의 무슨 형벌이려오. 그대는 벌써 소녀의 이름을 잊으시었소, 이미 죽은 사람이라 하여 잊으신게요. 죽은 혼백일지언정 임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불원천리 왔거늘 그대는 어찌 그리 무정하오. 하늘이 무정하오. 그래도 이 몸은 병든 아기를 내려다보는 어미처럼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으려오.

...인사불성으로 누워 지내던 그대가 눈을 뜨는구려. 며칠만에 그대의 뜬 눈을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소이다. 한때 서렸던 정기는 힘을 잃고 푸석푸석하게 꺼져들어간 눈두덩에 끼인 기미가 안타깝소. 눈을 뜬 그대가 가장 먼저 한 말이 무엇이던고, 게 누구 아무도 없느냐...

눈물이 울컥 터져나오더이다. 임금자리에서 쫓겨나 온갖 수모를 당하며 살면서도 그 한마디만은 여전하구려. 게 아무도 없느냐...아무도... 곧이라도 숨을 그칠듯이 되풀이 되풀이 사람을 부르건만 한참 뒤에야 불학한 군졸 놈이 '왜 그러시우, 귀치않게!' 쏘아붙이오그래. 가엾은 분이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고르더니 마지막으로 쥐어짜내듯이 입을 여시었소. 중전이 보고싶어...중전이...

그것이 당신의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으니 어찌할꼬. 



-연산군이 사망하니 대신들과 상사 문제를 논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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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수직장 김양필·군관 구세장(具世璋)이 와서 아뢰기를,
“초6일에 연산군이 역질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죽을 때 다른 말은 없었고 다만 신씨를 보고 싶다 하였습니다.”
하였다.【신씨는 곧 폐비다.】 상이 애도하고 중사(中使) 박종생(朴從生)을 보내, 수의를 내리고 그대로 머물러 장례를 감독하도록 하였다.
(중종 1권, 1년(1506 병인 / 명 정덕(正德) 1년) 11월 8일(계미) 2번째기사)



...그대가 숨을 거두고 난 방 안에 홀로 외로이 앉아 생각해보건대, 그대는 끝끝내 마지막에는 이몸 아닌 다른 여인을 그리워하는구려. 마치 소녀가 없던 사람인 것처럼, 소녀와의 많은 시간이 실은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리하는구려. 나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까지 그대를 사랑하였건만 그대는 그렇지 아니하였던 것이오. 아무리 물어도 텅 빈 방 안에 대답은 없고 오직 괴괴함만 메아리치오.

이제 여쭙건대, 소녀는 비록 목이 베이었건만 혼령이나마 남아 임의 곁에 왔으니 임의 혼은 어디에 있소. 그대가 죽을 때 마지막 그리워하던 신씨에게로 가서 그네의 슬퍼하는 양을 보고 따라서 안타까워하시려오. 혹은 그대가 만든 회릉에서 죽은 혼령이나마 낳아준 어머니와 함께 정답게 노시려오. 그대가 어디에 있건 이 몸은 언제까지나 그대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테요. 내가 사랑하던 임을 지켜볼테요.


-20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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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은식 2010/08/21 22:19 # 답글

    :Q..........조, 존잘님...!!
    선배 다른 글도 더 하사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류인현 2010/08/22 00:30 # 답글

    난 내가 이런 글 쓰는걸 매우, 무지막지하게 어려워해서 이런 글 쓰는 사람 보면 매우 존잘님으로 모시고 싶은 습관이 있어... 우우 조금 더 보고 싶다 힘들겠지만 좀 더 필력을 하사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존잘님 :Q...!!!
  • 개발부장 2010/09/24 12:42 # 답글

    오오, 멋집니다...! 역주행중인데 한꺼번에 다 보기는 아까울만큼 주옥같은 글들이 넘쳐나는군요,
  • 삼안마군 2013/11/18 20:28 # 삭제 답글

    추악한 욕망, 아름다운 사랑
    혼은 몸을 떠나나 백은 망부를 기다리는 돌처럼 오늘도 그곳에서 님을 기다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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