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정우기의 괴악차원 2호점



[단편]1812년, 정주성 소설

(태조가) 나라를 창건하고는 '서북 사람은 높은 벼슬에 임용하지 말라' 는 명을 내렸다. 그런 까닭에 평안, 함경 두 도에는 삼백년 이래로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 없다.

-「택리지」, 이중환


* * *


경신년(庚申年) 겨울 경상 진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밀양에서 진주까지는 300리가 넘는 길이었다. 가장 먼저 만난 마을의 여염에서 길 가던 나그네라 이야기하고 하룻밤 유하기로 하였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고, 나이 지긋한 집주인은 때아닌 길손에 싫은 기색도 없이 저녁상까지 보아왔다. 미안하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식은 보리밥일지언정 뜨거운 국물에 걸쳐 먹고 찌끼술까지 핥고 나니 노숙에 길든 몸뚱이는 무너져내렸다. 군불을 땐 흙방에서 피로가 이불이 되어, 나는 금세 머릿속이 몽롱해지고 잠 속으로 굴러떨어질 듯 했다. 그러나 내처 그렇게 잠들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휘뜩휘뜩 꺼져 가려고 하는 의식 속에서 나는, 내일 새벽 장닭이 울고 길을 나서면 고성(固城縣, 지금의 통영)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지리산으로 올라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지리산에는 이미 여러번을 올랐고, 지난 답사에서는 특히 심혈을 기울여 골짝을 누비고 산세를 더듬었다. 이제 임진란(壬辰亂) 그 당시 삼도(三道) 수군의 흔적이 남아있는 남녘을 돌아보아도 좋으리 싶으면서도, 어찌된 영문인지 아직 미련은 지리산에 남아 있었다. 지리산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며 40년 간 약초를 캐며 살아왔다는 산노인도 아직까지 지리산을 전부 알지 못하였다. 내 몇 년의 답사로 지리산의 전부를 지도에 옮겨놓을 수는 없는 노릇임을 알면서도 나는 언제나 이번에야말로, 라는 생각이 되어 지리산 자락을 타오르곤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결국 발걸음하게 되는 곳은 지리산일런가...이 겨울에 산을 오르려면 짚세기 밑에 따로 묶어 댈 것을 구해야겠구나... 명료하지 못하게 툭툭 끊어지는 정신으로 꾸벅꾸벅 생각하면서, 나는 사랑방 바닥에 녹아내리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것이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 뒤의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등허리에 언뜻 찬바람이 와닿는다 싶었을 때 나의 눈은 떠졌다. 사랑방에 누군가 또 객이 든 것인가, 문이 열리는 통에 바깥의 찬 바람이 방에 들어온 모양이다. 열린 문은 곧 닫혔으되 귀에는 이제 방 안에서 도란도란 울리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정신이 들었다.

근 몇십년 사이 염병이 돌고 흉년, 재해가 겹치다 보니 민심이 사나웠다. 떼를 지어 산 속에 살면서 행인을 약탈하는 도적도 있지만, 산 아래 외딴 집을 지어놓고 묵기를 청하는 나그네를 좋은 말로 맞이한 뒤 재물을 빼앗고 죽여 파묻는 도적도 있었다. 설마하니 진주 하고도 이러한 큰 읍에서 버젓이 그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아니하였지만, 몇년 전 설악산에서 그런 일을 한번 당할 뻔한 적이 있는지라 나의 가슴은 철렁하였다.

"성구 자네 왔나. 어여 기 앉그라."

잔뜩 긴장하여서 일어난 시늉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으려니 방구들을 손바닥으로 탁, 치는 소리가 들리었다. 이어 끙, 하며 털썩 주저앉는 소리에 이어서, "아랫목에 자빠져있는 저 삼시랑은 뉘고?" 라고 묻는다. 이어 들려온 "지나가던 길손이구만, 밤늦게 찾아들어온 걸 행색이 딱해서 하룻밤 재워보낼랑게." 라는 소리로 그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들이 무슨 일로 늦은 밤에 사랑방에 모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일단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치고저 하는 도당은 아닌 듯 하여 저으기 마음은 놓였다. 말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성구 자네, 자네 집에도 낮에 송 첨지가 찾아왔었겄네?"

"지미럴 놈의 영감태기. 집안 건사허기도 힘든 겨울철에 무슨 놈의 세를 또 걷겄다고 집집마다 싸돌아댕기는지 몰르것데."

"몰르는 소리 하덜 말그라. 쩌뻔에 실어간 세미(稅米) 운반하느라 축난 것 보충한다캐서 하는 짓인게. 쌀 실어내르던 배가 두 척이 가라앉아삤다 안해. 잘들 하는 짓이랑께."

예로부터 진주가 영남의 큰 읍이기는 하였으나, 위로부터 커다랗게 뻗친 지리산 자락에 치마폭처럼 휘감겨 다른 지역과 교류가 적었다. 때문에 진주 사람들의 말씨는 영남 사람이되 호남의 것도 종종 섞이어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괴이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지금 사랑방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남자들의 말씨가 바로 그러하였다.

"지랄염병을 헌다. 죽어라 농새져놓은 쌀 영축없이 실어가서 쟈들이 짠물 속에 처넣어놓고 그걸 왜 우리들헌테 돌리나?"

"모르제. 짠물 속에 처넣은 것잉지 뉘집 대감님 아가리에 들어간 것잉지."

"일쿠다가 올해 겨울 날 양식도 다 축나게 생겼는데 동회(洞會)에선 뭘 하는구?"

"동소임이라는 놈도 죄 사또랑 이방이랑 한통속 아이야."

"맞다. 동회에서 뭐가 될끼 같았으면 진작 됐지. 시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당게."

"문딩이 같은 눔들. 죄 삼태기에 담아다가 영천강 물에다가 쓸어넣었으면 좋것네."

"참말로 담아내부러...?"

"말마다 통문 돌리고, 담 장터날에 죄 모여서 동헌으로 몰려가가지고서는 수천 명이 난동 부리면 별 수 있나?"

"맘 같으면 죄다 대갈통을 부숴부렀으면 좋겄당게."

사내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못하는 말이 없네이, 사람들이! 우리들찌리만 있는 것도 아인데!"

왁자지껄해지려는 사내들의 입을 막은 것은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늙수그레한 노인의 목소리였다. 낮으면서도 빠른 그 목소리에 방 안이 삽시간에 고요해지고, 여러 명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을 나는 따끔거리는 뒷골로 읽었다.

문이 열린 것도 아니건만 다시 한번 등줄기가 시렸다. 이제와서 아니 잠들었네 할 수 없는 노릇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자는 양을 하는 나의 귀로, 아까보다 낮아진 사내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들으면 워쩌. 보아하니 우리네랑 벨반 다를 긋두 없게 생겼고만."

"죄 찌그러지고 구멍이 숭숭 뚫렸어도 중갓이나마 얹고 다니는걸 보니 그래도 중인 찌끄레기인갑다. 그눔의 종자들은 냥반도 아니고 상눔도 아닌 것들이 위세는 냥반보다 더하다니께."

"허긴, 한양 대감마님보다 무서운게 우리 고을 이방놈 아니것어."

"아서라, 중인 아니라 냥반이래두 저렇게 차려입고서야 대접 못받는다. 행세하는 집 사람이 이 늦은 밤에 남의 집 사랑에 재와달라구 허까. 아까 보니께 멫날메칠을 줄창 걸어온 것 같던데 지금쯤 시상 모르고 곯아떨어졌을거라."

아까 나를 대접한 집주인도 끼어서, 사내들은 이내 나에 대한 관심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등골이 따끔거리는 느낌은 사라졌지만, 사내들의 대중없는 말을 들으며 나는 또 다른 심정으로 고소하였다. 이번 답사도 벌써 1년 째, 조선 팔도를 골골이 헤집고 다닌 지금의 내 몰골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은 까닭이었다.

사내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주로 세금과 양식에 대한 걱정이었고 조정과 관리에 대한 원망과 증오였다. 소위 삼정(三政)이 문란하다 하여 근래 뜻있는 대신들이 근심하고 있다는, 혜강(惠崗)에게서 들은 이야기와 같은 것이었다.

혜강은 또 말했다.

-그러나 대궐 안 비변사 높은 곳에 앉아있는 대신들의 근심만으로 어찌 민심을 일일이 어루만져 달랠 수 있겠는가. 조만간 조정에서 어떤 대책이 있을 듯 하나...

혜강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의 흐린 말끝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그 조정의 대책이라는 것이 언제 세워질 것인가, 또한 과연 그것이 민초들을 위무하는데에 효험이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이야기가 나도는 암행어사(暗行御史)는 소문만이 무성할 뿐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허깨비와도 같은 조정의 대책이었다. 상감의 명을 받잡아 지방 수령들을 탐지하러 다니는 암행어사는 공공연히 신분을 드러내고 행패를 부리거나, 부패 수령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거나 혹은 수령에게 살해당하곤 했다. 오로지 상감 한 사람 만이 임명할 수 있고 파견할 수 있는 암행어사 몇 명으로 팔도 전반에 만연한 고질을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궐 깊숙한 곳 엄숙한 전각 안에서 당상 대신들이 수립할 새로운 대책이라는 것은 또 어떤 것일지, 나는 곳곳마다 메아리치는 민심의 붕괴를 목도하며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아재, 이놈의 세상이 어떻게 뒤집어지기는 하것능교?"

한 사내의 은근한 말이었다. 아재라고 불린 사람이 말하였다.

"하모. 뒤집어지구말구. 두고 보아. 언젠가 꼭 뒤집어질끼니네. 두고 보라." 

이제보니 아까 전의 그 늙수그레한 목소리였다. 아까 전의 나지막하던 음성에 돌연 힘이 실리고, 그 말씨에 평서(平西)의 기세가 섞여드는 것을 깨닫고 나는 문득 의아하였다.
 
"아재도 참, 워째 그리 장담을 하시오. 내 이눔의 더러운 시상 뒤집힌다 뒤집힌다 캐도 참말로 뒤집히뿌는 거슨 못봤응게."

또다른 사내가 피식 웃는 소리였다. 비웃는 듯, 탄식하는 듯한 자조섞인 그 말을, 늙수그레한 음성은 힘이 꾹꾹 실어 도리질 하듯이 답하는 것이었다.

"아니라, 아니라우. 내래 살아생전에 이미 한번 조선 팔도가 흔들흔들 했었어. 이제 언제고 또 한번 세상이 발칵 뒤집어질테니끼네, 어디 두고보라우."

"아재 살아생전에 팔도가 진동을 했다니, 고것이 무슨 소리인교?"

은근한 목소리가 의아함을 담아 물었다. 늙수그레한 목소리는 그 물음을 듣고 잠시 후회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다가, 잠시 후에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들 혹 어러신들께서 홍경래(洪景來)라는 이름 더러 말씀하시는 것 들은 적 없네?"

나는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이야기하는 이름을 듣고 움찔 놀랐다.

"그게 뉘인교? 뭐하는 사람이요?"

"가만있어보아. 내 들어본 적 있는 기 같다."

"자네가 에디서 그걸 들었어?"
 
"저 윗말에 향교 다니는 김 선달이 야그하는 걸 들었는데 평서대적(平西大敵)이라느니 멫십 년 전에 역적질 하다가 잽혀 죽은 눔이 있다구 하드만. 그 역적 괴수 이름이 홍경래라데."

"그라믄 그거 역적놈 이름 아인가?"

"역적놈, 평서대적?"

하고, 늙수그레한 목소리는 되짚어보듯이 중얼거리면서 쿨룩쿨룩 웃었다. 연신 밭은 기침을 토해내던 늙은 음성이, 곧 물기젖은 듯한 어조로 가느다랗게 이어져 나온다.

"기래, 기래. 인제 발써 오십 년이 지났구만. 하긴 쩌 북녘 청천강 니북에서 발싸심한 일을 진주바닥에서 알 사람이 누가 있갔어. 다 지나간 일이라. 지나간 일..."

"아재,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깁니까?"

"내 젊을 때 서북에서 큰 난리가 일어났디."

그때 내래 스물도 안된 떠꺼머리 총각놈이었는데...라며, 늙수그레한 목소리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 * * 

1812년 3월 말.

정주성은 을씨년스럽고 고요했다.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도 그친 지 오래였다. 성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람은 삼천이 넘었으나, 그들은 모두 핏발 선 눈을 번득이며 입을 다문 채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이따끔 부상자의 신음소리와 어미의 품을 파고들며 젖을 찾는 어린아이의 칭얼거림이 가느다랗게 끓을 뿐, 겨울의 혹한이 아직 돌 틈새에 서려 있는 것 같은 정주성은 그 냉랭함이 성을 통째로 얼려 놓은 듯 조용했다.

바깥의 공기는 아직 냉기를 머금어 서늘하되, 엷게 내리쬐이는 햇살만큼은 바뀐 절기를 말해주듯 따스했다. 홍경래는 성첩(城堞) 뒤에 서 있었다. 유난히도 왜소하여 마치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중년의 작은 체구가 묵묵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원수님!"

성벽 아래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홍경래는 눈을 몇번 깜박이고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떠꺼머리의 총각이 헐레벌떡 성벽 위로 올라와 "대원수님!"이라고 재차 부른 뒤, 넙죽 한쪽 무릎을 꿇었다.

"취의청(聚義廳)에서 지금 회의가 있으니 뵙는대로 속히 와주십사 하고 군사(軍師)께서 말씀하셨습네다."

홍경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군사라니, 어떤 군사께서 말씀하셨단 말이네? 라고 물으려다가 그만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본래 농민군의 군사가 우군칙(禹君則), 김창시(金昌始)의 두 사람이었던 것이, 김창시가 자객의 손에 명을 달리하고 마는 바람에 우군칙 혼자 남게 되었다. 청천 이북 8고을을 수복하기 위해 몰려든 관군과의 싸움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죽은 지 두 달이 넘게 지났는데도 여전히 홍경래는 우군칙의 옆에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가엾은 사람아, 싸우다 죽은 것두 아니고 그렇게 가버리는 법이 어디 있간... 홍경래는 다시 한번 시선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점 없이 새파랗게 맑은 하늘에 겹쳐, 히끄무레하게 단아한 얼굴을 하고 있던 김창시의 모습이 떠올랐다. 본래 김창시는 곽산 일대의 명문장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 거개가 북녘의 거친 성품을 지니고 있는 다복동 농민군 수뇌들 사이에서 김창시는 홀로 한마리 학처럼 우아하고 가련했다. 그가 없으니 이제 홍총각 홍이팔(洪二八)이 사나운 성질머리는 누가 다스려야 하누...

홍경래는 눈을 돌려 성벽 아래쪽을 흘겼다. 그의 시선이 가닿는 곳에는 새까맣게 몰려든 관병들이 진을 치고 관서위무사(關西慰撫使)이니 감진사(監賑史), 양서순무사(兩西巡撫使) 등등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었다. 이 밖에도 조선 팔도에서 몰려든 창의(昌義) 유생이며 의병장들의 군대까지 모여 그 수는 1만을 넘기고도 남았다. 

창의 의병이라고, 기래? 더러운 아새끼들! 조정에 아첨해가지고서리 무얼 얻어먹겠다고 몰려들었네? 쳐죽일 놈들 같으니라구...

홍경래는 정주성을 포위한 그 압도적인 병력을 입술을 깨물며 돌아보았다. 포위망에는 빈틈이 없었으며 곳곳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주성에서 농성한지 어언 삼개월 째. 이제는 농성을 위한 양곡도 동나가는 성 안에 비해 관군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남은 3천 명 가운데 삼분지 일이 넘는 사람이 노인과 여자, 어린아이인 정주성 농민군의 사기는 날이 갈수록 떨어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원수님?"

떠꺼머리의 의아스러운 부름을 듣고 나서야 홍경래는 증오스러운 눈길을 거두어 몸을 돌렸다. 그가 마지막으로 두 눈에 새겨둔 것은 관군의 막사 여기저기에서 실어날라지고 있는 부상병과 사망자들의 행렬이었다. 엿새 전 우군칙이 몸소 앞장서서 서북문을 열고 쏟아져나간 그때 관군은 꽤나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역적들을 성 안에 몰아넣고 마음을 놓고 있었을 관군 놈들에게 호된 맛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만족스러우나, 이제부터 관군의 공세가 가일층 격화되리라는 예상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가디. 앞장서라우."

홍경래는 취의청에 들어섰다. 취의청은 정주성 전체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도록 조용했다. 안쪽에 둘러앉아 있던 수뇌진들이 대원수가 들어서자 분분히 일어나 예를 표했다. 홍경래는 상석에 앉은 뒤 손을 흔들어 그들을 앉혔다. 한 사람만 앉지 않았다. 군사 우군칙이었다.

"기럼 대원수께서 오셨으니 회의를 진행하겠습네다."

우군칙은 중키에 눈썹이 짙고 턱이 각진 사내였다. 일찍이 절에서 학문을 연마하여 세상에 안읽은 책이 없다는 사내이지만 머릿속에 든 경략과 지모에 비하여 생김은 험상궂었다. 비록 군사 직함을 달고 있을망정 필요하다면 직접 칼을 빼들고 병력을 몰아 관군과 대적할 수 있었고,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어울리지도 않는 학창의와 익선관을 차려입을 줄 알았다. 우군칙은 그런 사내였다. 

"근래 성 안에서 염병이 돌고 있습네다. 부상에 염병까지 겹쳐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군칙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가. 멀쩡하던 사람이 돌연 픽 쓰러져 피똥을 싸다가 죽어나가는 역질 앞에서 변변한 의원조차 없는 이 고립된 성이 취할 수 있는 대책이 어디에 있으랴.

성 안에 가축의 소리가 끊긴 지 오래였다. 닭 피를 내어 문지방에 바르는 서글픈 민간처방이나마 시도해볼 길 없는 성 안에서 농민군은 속속들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다. 겨우내 초근목피에 쇠가죽까지 물에 불려 뜯어먹으며 연명해온 굶주린 몸은 병마가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견디질 못하였다.

"아새끼들 또 우수수 죽어나가겠수다래..."

부원수 김사용(金士用)이 고개를 틀며 신음하듯 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김사용은 승승장구했다. 북진군(北進軍)을 이끌고 용천까지 밀고 올라감으로써 의주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김창시의 목숨을 앗아간 그 곽산 전투에서 관군과 의병에 대패하여 간신히 정주성에 합류했다. 농민군의 제 1차 목적을 눈 앞에 두고 쫓겨내려와야 했던 김사용의 얼굴에는 그새 깊은 주름이 늘어 있었고, 목소리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말했다.

"역병 때문인지는 몰라두 뇨즘 공기가 좋지 않시다. 요대로 가면 다 죽는다구 밤새 성을 넘어 도망하는 병졸들도 많이 생기고..."

"뭐이 어드래, 도망?"

김사용의 말을 가로막듯이 버럭 소리지르고 나선 것은 7척 장신에 엄장이 굉장한 젊은이다. 눈은 쭉 째지고 얼굴에는 얽은 자국이 아직 남았는데 고슴도치같은 검은 수염이 숭숭 났다. 선봉장 홍총각, 홍이팔이었다.

"어느 잡아찢을 간나새끼들이 도망질을 한단 말이우. 내래 오늘부터 밤마다 파수를 봐서 그런 놈들이 잽히면 죄 모가지를 끊어놀테니 맡겨줍시오!"

홍총각은 농민군의 남진군 선봉장이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는다는 천하장사여서 그가 왼뺨을 후려갈기면 오른눈알이 빠진다는 소문이 있었다. 태천 관아의 걸어잠긴 문을 도끼로 때려부순 것도 그였고, 박천 송림리의 한맺힌 전투에서 관군 수십 명을 쳐죽이며 분전한 것도 그였다. 그러나 그 한 사람만의 용맹으로 대세를 전환할 수는 없었다.

도망병이라...쩌렁쩌렁 울리는 홍총각의 괄괄한 목소리와 그걸 말리는 우군칙 김사용의 소리를 들으면서 홍경래는 생각했다. 사실,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었다. 싸움이 밀리는 기미를 보이고 정주성으로 쫓겨들어가게 되자 봉기군을 후원하던 상인 나부랭이들은 진작에 등을 돌렸고, 오히려 관군의 횡포에 들고 일어선 농민들이 힘을 합쳐왔다. 그런 농민들마저도 패배와 역병과 굶주림이 겹친 정주성에서 하나 둘 부스러져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밤마다 파수를 본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며 설령 해결된다고 해도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있는 길은 못되었다. 홍경래는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평서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니 관서의 부로자제(父老子第)와 공사천민(公私賤民)들은 모두 이 격문을 들으라.


무릇 관서는 기자와 단군 시조의 옛터로서 벼슬아치가 많이 나오고 급제하고 문물이 발전한 곳이다. 저 임진왜란에 있어서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공이 있으며, 또한 정묘호란에는 양무공 정봉수가 충성을 능히 바칠 수 있었다. 돈암 선우협의 학식과 월포 홍경우의 재주가 또한 이곳 서도에서 나왔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서쪽 땅을 버림이 분토(糞土)와 다름 없었다. 심지어 권문의 노비들도 서쪽 땅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 놈이라 일컫는다. 서쪽 땅에 있는 자 어찌 억울하고 원통치 않을 수 있겠는가. 막상 급한 일에 당하여서는 반드시 서토의 힘에 의존하고 또한 과거 시험에 당하여서는 저쪽 땅의 글을 빌었으니 사백 년 동안 서쪽 사람이 조정을 버린 일이 있는가.


지금 나이 어린 임금이 위에 있어서 권신들의 간악한 짓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김조순 박종경의 무리가 국가의 권력을 제멋대로 하니 어진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겨울 번개와 지진이 일어나고 재앙별과 바람과 우박이 없는 해가 없으니 이 때문에 큰 흉년이 거듭 이르고 굶어 부황든 무리가 길에 널려 늙은이와 어린이가 구렁에 빠져서 산 사람이 거의 죽음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오늘 세상을 구제할 성인이 청북 선천 검산의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 가야동 홍의도에서 탄생하셨다 나면서 신령함이 있었고 다섯 살 때에 신승을 따라 중국에 들어갔으며 성장하여서는 강계 사군의 여연에 머무르기 5년에 황명의 세신유족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철기 10만으로 부정부패를 숙청할 뜻을 가지셨다. 그러나 이 곳 관서 땅은 성인께서 나신 고향이므로 차마 밟아 무찌를 수가 없어서 먼저 관서의 호걸들로 병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구하도록 하였으니 의로운 깃발이 이르는 곳에 소생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제 격문을 띄워 먼저 각 주, 군, 현의 고을원들에게 보내니 절대로 동요치 말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대를 맞으라. 만약 어리석게도 항거하는 자가 있으면 5천 기마병의 발굽으로 밟아 무찔러 남기지 않으리니 마땅히 명령을 따라서 거행함이 좋으리라. 위 격문을 안주병사, 우후목사와 숙천부사, 순안현령, 평안감사, 중군, 서윤과 강서현령, 용강현령, 삼화부사, 함종부사, 증산현령, 영유현령에게 내리노라. 대원수>



1811년 12월 18일, 홍경래는 다복동에 집결한 수천 장졸들 앞에서 격문을 읽었다. 그때 그의 음성은 우렁찼으며 힘이 있었고, 두 눈에서는 불꽃이 튀겼다. 용기충천한 병력은 남북으로 나뉘어 청천강 이북을 휩쓸었고 그 기세는 뇌성벽력같았다. 단 열흘을 세기도 전에 가산부터 용천까지 일곱 고을이 무너져내렸다. 내통한 아전이속들의 거짓 정보에 각 군의 관군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부서졌고, 부사와 현령은 도망치거나 앞장서 목숨을 구걸했다. 병영(兵營)이 있는 안주를 공략하기 위해 남하하기 전까지 그들은 남과 북에서 모두 이겼다.

그러나 홍경래는 기뻐하지 않았다. 10년 동안의 준비였다. 관서의 장사와 인재를 끌어모으고 부호들을 모집하여 자금을 융통하고 광산을 꾸며 장한들을 유인해 훈련을 시켰다. 그 10년 간의 준비로 이제 겨우 여덟 곳 조그마한 고을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의주를 점령하면 북쪽 포수병들이 거병할 것이었고, 안주를 손에 넣으면 평양을 거쳐 한양은 목전이었다. 북에서 시작해 남쪽 끝에 이르기까지 그는 결코 성급하게 기뻐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작은 고을들이나마 모두 빼앗기고 작은 성 속에 틀어박혀 최후로 치닫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 홍경래는 분통하지는 않았다. 이기고 있을 때 기뻐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는 지고 있을 때 슬퍼하지 않았다. 그저 아쉬운 마음이 있을 뿐이었다.

"...님, 대원수님."

홍경래는 감고있던 눈을 떴다. 우군칙을 비롯하여 취의청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사용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피곤하신가봅니다래, 대원수님."

피곤? 그야 피곤하지 않을 리 없었다. 지난 며칠 간 식량이 떨어지고 아사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그는 흉흉해지는 성 안의 민심을 다잡기 위해 말을 달리며 칼춤을 추고 굶어죽은 시체 앞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 방안은 우군칙이 제시한 것이었지만, 그는 정말 그것으로 굶주린 민심이 달래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그렇게 하고 싶었기 때문에, 죽은 시체를 위해 통곡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했다. 마음은 가벼워졌지만 몸은 무거웠다.

"아무것도 아니라. 기래서, 무슨 이야기였나?"

홍경래는 눈두덩을 꾹꾹 누르며 물었다. 우군칙이 대답하기를,

"성 안에서 내보낼 만한 사람은 내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 말이 나왔습네다."

"또...?"

홍경래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성 안에서 굶어죽어가는 노약자를 보다못해 관군에 휴전을 제의하고 부녀자를 밖으로 내보낸 것이 사나흘 전이었다. 늙은 여자 백 여명과 어린아이 몇 명을 내보냈다. 그런데 다시 사람을 내보내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

우군칙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홍경래는 이내 알아들었다.

"졸 대로 하라우. 헌데 관군 아새끼들이 받아줄지 모르갔구만."

우군칙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하지 않은 말 중에서 자신이 알아듣지 못한 말은 얼마나 될까. 홍경래는 생각했다. 양식도 없는 성 안에 놔두어 굶겨죽이느니 밖으로 내보내는게 옳습니다. 데리고 있어봐야 제 수족도 제대로 놀리지 못해 싸움을 시킬 수도 없고 잡일을 시킬 수도 없으니...그리고, 그리고...

성이 곧 무너지게 되면 모두 죽게 될 터이니, 그 전에 한사람이라도 살려보는 셈 치고- 우군칙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군사는 전황을 읽는다. 결국 그날 회의에서 우군칙이 이야기한 것은 역병과 성 밖으로 내보낼 사람에 대한 것 뿐이었고, 군사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되지 아니했다. 호병(胡兵) 정시수(鄭始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호병. 아아, 호병. 정시수는 조선 사람으로서 중국 마적이 된 사람이었다. 다섯 살 때 만주로 건너가 마흔이 된 지금은 휘하에 수천 명 마적을 거느리고 횡행하고 있었고, 이번 거사에서 홍경래가 연락을 보내면 곧 압록강을 건너와 합류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하 송지렴(宋之濂)에게 서찰을 들려 원병요청을 보낸지 이미 오래건만 정시수는 오지 않았다. 정시수가 마음이 변한 것인지, 송지렴이 변절한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성 안에 갇히어 기약없는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은 일전을 벌여 통쾌하게 패배하는 것보다 괴롭고 힘겨웠다. 정시수는 오지 않았다.

박종일(朴鍾一)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도 그를 답답하게 했다. 박종일은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손자였으며, 홍경래가 난을 일으키면 서울에서 봉기하여 남북에서 조선을 뒤흔들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박종일이 거사를 일으켰다는 소문은 들려오지 않았으며, 관군이 동요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포위망은 날로 두터워져만 갔다.

'천지가 뜻이 있어 한 남자를 낳았도다’(乾坤有意生男子)... 홍경래는 속삭이듯 뇌까렸다. 그가 장졸들을 위무하기 위해 말에 올라 칼춤을 출 때 지어 읊은 싯귀였다. 하늘의 뜻이라는 게 이런 것일런가. 세상이 이 홍경래를 고작 이렇게 쓰기 위하여 내었는가...홍경래는 회의가 끝난 뒤 어둑어둑해져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게 웃었다.

다음 날, 우군칙의 지휘하에 성 밖으로 내보낼 어린아이와 여자들이 선발되었다. '성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굶주림과 병에 못이긴 여인과 아이들은 앞다투어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우군칙이 성첩에 올라 관군과 교섭하고 여인들을 내보내는 동안, 홍경래는 어제의 떠꺼머리 총각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이다."

대원수가 툭 내뱉은 말이었다. 떠꺼머리 총각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깜박일 때, 홍경래는 흘러가는 구름처럼 무심히 물어오고 있었다.

"뇨즘 도망병이 많다고 하디 기래?"

"기렇긴 헙니다만..."

대원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더듬더듬 얼버무리는 떠꺼머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홍경래는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니두 도망가고 싶지 않네?"

"아, 아입네다."

떠꺼머리는 대원수의 의중을 읽을 수 없었다. 뜻하지 않은 질문에 놀라 땅파기로 손을 내저을 뿐인 총각놈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홍경래는 피식 웃었다.

"도망가라우."

"예에...?"

"그게 하늘의 뜻인갑데. 내래 어제 생각해 봐서."

성첩 아래로 끝없이 늘어선 군막과 진영을 내려다보며, 홍경래는 중얼거렸다. 관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이미 어제와 같은 증오와 분노는 없었다.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결국 떠꺼머리는 더듬더듬 말했다.

"대원수님, 거그 서 계시다가 총알 맞겠습네다."

"총알?"

"간나 새끼들이 조총이라도 쏘면..."

"내래 총알 같은 걸로 둑지 않아."

느긋이 선 자신을 걱정하는 어조로 이야기하는 떠꺼머리 총각에게, 홍경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떠꺼머리 총각놈의 눈이 갑자기 반짝거린 것은 그 다음이었다.

"하면, 그 소문이 사실입네까?"

"무슨 소문?"

"듣자허니 대원수님은 축지법을 쓸 줄 알아서 하루에 오백 리를 가고, 둔갑술을 쓸 줄 알아서 총알을 맞어두 죽지 않구, 차력을 할 줄 알아서 힘이 천하장사라구 헙네다. 그게 참말입네까?"

"......"

홍경래는 여전히 성첩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여전히 시큰둥한 소리로 대답한다.

"참말이디, 참말이구 말구."

떠꺼머리 총각은 화아, 놀란 소리를 내더니 바투 달라붙는다. 성첩 바깥으로 머리가 나가는 것도 아랑곳않고 잔뜩 흥분해서는 '그러믄 대원수님이 소싯적에 선봉장님이랑 쌈 붙어서 옴작달싹도 못하게 이겼다는 것도 사실입네까?' 라느니 묻고 있다. 기럼 기럼, 하고 적당히 대답해가면서 홍경래는 내심 웃었다.

내래 스스로 원치 않아두 하늘의 뜻으로 천년 만년을 살갔구만... 그는 혼자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떠꺼머리를 데리고 성첩에서 내려왔다. 여인들을 내보낸 성문이 닫히고 있었다.

* * * 

1812년 4월 중순.

관서에서 일어난 역적 무리의 잔당이 정주성에 틀어박혀 농성을 시작하매, 비록 적당의 예봉이 크게 꺾이었다 할 망정 완전한 소탕을 이루어내지 못한 순무영에 대해 조정의 독촉이 성화와 같았다. 지난달 11일 박종일의 무리가 난을 꾀하다가 붙잡혀 주살된 이후 한양의 민심마저 소란스러웠고, 관군과 봉기군의 대치가 겨울을 넘기고 4개월 째에 이르자 공론이 물끓듯 일어올랐다.

어찌 서둘러 도적을 진압하지 않고 세를 키워 민심을 소란토록 만들려 하느냐... 수천리 바깥 대궐 안에 앉아있는 대신들의 꾸중은 추상같았다. 정주성을 둘러싼 관군은 더이상 시일을 지체할 수 없었다. 

* * * 
 
정주성은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겨울을 나기에도 부족했던 양식은 이제 그야말로 바닥을 드러내어, 근래에는 대원수를 포함한 수뇌진까지 끼니를 굶고 있는 형편이었다. 홍총각은 벌써 여러번이나 먼저 성문을 열고 일제히 쳐나가자고 주장했으나 굶주린 병사들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성 안에 앉아 굶어죽기를 기다릴 수만도 없었다.

어차피 수뇌부들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었고, 살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다만 자신들을 믿고 성 안으로 들어와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남녀를 가리지 말고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내보내자고 우군칙이 제의하였으나 홍경래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들과 함께 함으로써 이미 역적의 장부에 올라있을 그들을 지금에 와서 관군이 살려줄 것인가. 그는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었고, 그것이 평서대원수의 마지막 일 중 하나가 될 터였다. 

홍경래는 결정을 내렸다. 


1812년 4월 19일. 


홍경래는 살아남은 사람들을 새벽부터 모두 불러모았다. 늙은이와 어린아이, 여인과 남자를 가리지 않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먹지 못해 말랐고 병이 들어 초췌했다. 자칫 입을 열면 기운이 빠져나갈세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상에 선 대원수만을 올려다보는 2천여명 사람들을, 홍경래는 역시 말없이 둘러보았다.

한때 이처럼 수천명 사람을 앞에 놓고 단상 높은 곳에서 격문을 읽었다. 그때 홍경래의 목소리는 산이라도 허물 듯 우렁차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음성은, 조용했다.

"살아나가고 싶으네?"

짧은 말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고 망연한 시선만을 보내는 군중을 향해, 홍경래는 다시 물었다.

"여기에서 살아나가고 싶은 사람 있나? 있으면 손을 들라."

"살 수 있는 깁네까?"

누군가가 외쳤다. 크게 낸다고 낸 소리이겠지만 며칠을 굶어 힘이 없는 소리였다. 홍경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살 수 있는 깁네까?"

"모른다."

홍경래는 짧게 대답했다.

"살아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당장 성 밖으로 나가서 관군에 항복하라우. 그렇게 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디."

"아새끼들이 우릴 살려주것습네까?"

"그야 내도 모르디."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는 술렁거리는 군중들을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시선을 위로 향한 채 홍경래는 말했다.

"느이는 억지로 끼어든 기야. 역적놈들이 공갈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성에 들어온거라. 그래서 시방 여그 있는거라우. 그렇잖간? 그런데 아새끼들이 꼭 느이를 죽일 이유가 있겠나?" 

술렁이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항복하는 겁네까?"

"우리들은 아이라. 우리들은 막으려고 해서, 느이가 억지로 성문 열고 나간거라우.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겠나?"

사위가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침묵 속에서 외쳤다.

"하믄 대원수님은 어찌합네까?"

"내래..."

죽어야지, 별수 있간? 이라고 대답하려다가 홍경래는 멈칫했다. 외친 누군가가 어제의 그 떠꺼머리 총각 녀석임을 알아본 탓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의문에 가득찬 얼굴을 하고 있는 떠꺼머리 뿐만 아니라 2천 군중을 한 눈에 담으면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내야, 둔갑술이 있디. 내래 여그서 잠시 죽은 척 했다가, 다시 사람들을 모아 일어날 기야. 그러니까 느이들은 기다리기만 하라우. 내래 죽지 않고 천년을 살아서 세상을 뒤집어 놓을 것이네."

홍경래는 곁눈질로 단상 아래를 보았다. 김사용 이하 여러 수뇌진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 있었다. 홍경래 그 자신도 역시, 높은 단상 위에서 수천명의 시선 앞에 서있지 않았다면 그러했을 것이었다. 서서히 밝아지는 사람들의 얼굴빛을 본 다음부터는 더욱 그랬다.

"두고 보라우, 내래..."

무언가 이어지려던 대원수의 말이,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에 흔적도 없이 삼켜진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다.

* * *

"관군 아새끼들이 우리덜 모르게 땅굴을 파놓고 화약을 수천근 묻은 거라. 그것이 일제히 터졌시니 아무리 덩주성이 금성철벽이라구 해도 어찌 버티겄네. 귀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성벽이 무너져있데. 관군이 구름같이 몰려들면서 총질을 해대는데 머, 어떻게 할 재간이 없었디."

관군은 북문과 서문의 아래쪽으로 땅굴을 팠고, 화약 2천 근이 북문 아래쪽에 매설되고 폭파되었다. 대포에도 끄덕없던 성벽이 무너져내리자 연기가 걷히기를 기다려 포수병이 난입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움직이는 것은 모두 쏘아 삽시간에 수백 명이 고꾸라지고 넘어졌는데 그중에 홍경래도 있었다. 홍경래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성 안에 '대원수님' 이라는 통곡이 메아리쳤다. 이에 관군이 총을 맞은 자가 역적 괴수임을 알고 일제히 몰려들어 난도질을 해댔다. 포수병이 물러서고 창수들이 나서서 눈에 띄는대로 찌르고 베었다.

"내래 대원수님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까지 보구 그대로 줄달음질을 쳤디. 먹은 것두 없는데 발이 멋대로 움직이드만. 그때 내처럼 도망질해서 목숨 건진 사람이 백에 하나도 안될기야."

오랜 공성전의 울분을 풀려는지 관군의 창검은 무자비하고 잔혹했다. 80먹은 노인에서부터 포대기에 싸인 어린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찔러죽였는데, 나중에야 이를 안 관군의 장수가 제어하려 해도 용이하지 않았다. 정주성이 떨어진 직후 2983명이 체포되어 여자와 소년을 제외한 1917명 전원이 즉석에서 처형당하였다.

성 안에서 홍경래와 김사용이 죽고, 성 밖에서 도총(都摠) 이희저가 죽었다. 우군칙, 홍총각, 김이대, 윤언섭, 양시위, 최이륜 등은 모두 사로잡혀 한양으로 끌려와 국문당한 후 다음달 5일 참수당했다. 홍경래의 수급은 대역죄인이라는 깃발을 달고 사흘동안 거리에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홍경래의 난이 진압되었다.

"...내래 무사히 도망쳤지만서두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디. 덩주성이 무너진 뒤로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고일어날라 했던거라. 혹여 우리 대원수님이 아닌가 싶어가지고서는 뒷소문이나마 들어보려 가보면 또 저쪽에서 난이 일어나구... 그렇게 이십 년을 떠돌다가 게우 여기 머무르게 됐네. 결국 그 뒤로 두번 다시 대원수님을 뵌 적이 없구만."

이야기를 마친 늙수그레한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제각기 입을 열어 탄식하였다.

"내괴, 어째 아재가 이따끔 북녘 말씨로 이야길 하더라니."

"워째 수십 년 동안 우리들한테꺼정 한마디도 내덜않고 사셨는교? 참말로 놀래뿌렀소."

"헌데 오늘 갑자기 요런 야그를 하시는 건 우째섭니까?"

"내 살 날이 얼마 안나믄 것 같아서 그랬다."

노인의 음성이 한숨을 쉬었다.

"내사 인제 나이가 일흔이 다 됐시니 얼마 안있으면 황천으로 갈거라. 글쿠 되믄 우리 대원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시상에 또 멫 명이나 있겠나? 내 죽고 나서라도 우리 대원수님이 다시 세상에 나오시면 자네들이 오늘 이약을 떠올리게 될 것이네."

"아니, 아재. 그 홍갱래인가 하는 사람은 죽어뿌렀다 안했십니까?"

"살아있다케도 시방 나이가 구십이 넘었을 것인디, 산송장이 다 되았갔소."

"아니라, 아니라. 살아있디, 살아있어."

아재라 불린 노인은 도리질치듯 말하였다.

"내래 대원수님 찾아서 팔도 방방곡곡을 돌아댕기믄서 알았디. 대원수님이 돌아가시고 10년 20년이 지나서까지 대원수님 이름을 걸고 봉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단 말이라. 대원수님 이름을 기억하고 거 뒤를 따래 일어나는 아들이 있는 한 대원수님은 돌아가신기 아닌기라. 하모. 내래 떠돌아댕기든 걸 멤추고 여기 눌러붙은 게 대원수님 말씀을 그제사 깨달았기 때문잉게. 언제고 다시 살아돌아오셔서 이눔의 세상을 뒤집어 엎으실끼니네. 내래 그리 믿고 있는기야. 내래..."

기침소리와 함께 늙수그레한 목소리는 점차 잦아들어갔다. 모인 사람들은 더이상 아무 소리도 내지 아니했고, 나는 고요해진 방 안에서 어느새인가 도로 잠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고, 방 안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흡사 어젯밤의 일이 모두 꿈인 양 나는 망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집주인에게 치사하고 떠나면서, 나는 집주인의 얼굴에 역시 눈물 흘린 자국과 함께 비분강개한 기색이 남아있는 것을 보았다.

지리산을 향해 발길을 옮기면서 나는 생각하였다.

홍경래의 난이 있은지 이미 오십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가슴 속에 품고 있으면서 새로운 홍경래를 기다리는 자가 있었으니, 이것이 어디 그 노인 한 사람만의 생각이겠는가. 어제와 같이 오십 년 전의 일에 대해 전해들은 사람들 중 스스로 나서서 홍경래를 자처하려는 자가 반드시 한명도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그때 홍경래의 밑에 들어가 수하가 되려는 자가 수천명이 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 조선 팔도를 돌아보니 수십 년 폐해가 터지기 직전의 종기처럼 곪고 곪아, 해서이건 관서이건 영남이건 호남이건 홍경래가 자라나지 못할 땅이 없었다. 이미 짓밟아 없앤 홍경래를, 조정과 이 나라는 오십 년 걸려 다시금 길러내려 하고 있었다. 일전에는 관서의 홍경래 하나만 토벌하면 되었다지만, 장차 팔도 전체에서 수십의 홍경래가 나타난다면 조정은 어찌할 것인가. ...이번 답사가 끝나는 대로 혜강을 한번 찾아가보아야 할 일이라고 나는 다짐하였던 것이다.
 
-完-

-연표 및 도움말-

1812년 홍경래의 난 일어나다. 이후 크고 작은 민란 끊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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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동학 교조 최제우, 동학을 창시하다. 

1862년 진주민란 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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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 발발하다. 갑오개혁 실시.

*혜강(惠崗)은 최한기(崔漢綺, 1803 ~ 1877)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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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자짜리 단편입니다. 구상은 꽤 옛날 전부터 했는데 시간이 난 김에 써보았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군요...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 2011/06/13 22: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버정우기 2011/06/15 22:51 #

    데헷
  • 콘푸레이크 2011/06/14 02:10 # 답글

    이 새벽에 아주 잘 보고 갑니다.
    읽는 맛이 납니다.
    이런 문체로도 쓰실 수 있으셨군요.
  • 오버정우기 2011/06/15 22:53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__)
    소설에는 장르마다 어울리는 문체가 있는 것이겠지요. 표현하고 싶은 테마 나름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문체로 써야 할 때에는 다른 문체로도 쓴답니다;;
  • 츄우우 2011/06/20 17:29 # 삭제 답글

    이런것도 색다르고 조쿤뇨
  • 대공 2011/07/24 00:50 # 답글

    그냥 잘 보고 갑니다.
  • 키세츠 2011/07/26 12:58 # 답글

    호오. 이런 쪽으로도.....? 좋은 맛이 납니다.
  • 레드 2014/11/23 02:11 # 삭제 답글

    니같은 일뽕맞은 쪽빠리새끼가 되도않는 한국배경 소설을 싸갈기고 있는 꼬라지를 보면은
    진짜 껍데기를 벗겨 소금밭에서 굴려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저승에 계신 우리 조상님들이 니년같은 일뽕맞은 원숭이 새끼가 이런 좆같은걸 싸갈기고 있는 꼴을 보시면 단숨에 무덤에서 벌떡하고 일어나 니 씹새끼 갈기갈기 찢어서 기름에 바싹 튀겨버리실거다.
    양뽕맞은 씹미개흉물 패죽여버릴 쪽빠리 병신새끼가.

  • 레드 2014/11/23 02:11 # 삭제 답글

    니는 니가 양뽕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지?
  • 레드 2014/11/23 02:13 # 삭제 답글

    하여간 씹 쪽빠리 새끼 니 만나면 씨발 칼로 찔러죽여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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